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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 하안거 해제 법회 -- 종정예하 법어

관리자 | 2016.08.19 00:12 | 조회 2658



[사진 : 병신년 하안거 해제 법회를  파한 후, 금강계단을 내려오시는 종정예하]


 지난 8월 17일 팔공총림 동화사 통일대불전에서

 병신년 하안거 해제법회를  봉행했습니다.


종정예하께서는  하안거 해제 법회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한 ‘해제’가 있을 수 없다”면서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일체처 

일체시 챙기기"를  간곡히 당부 하시고,  이에 덧붙여

"애 써고 애 써서  화두(話頭) 한 생각을 챙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습기(習氣)는 잠 자고,  

화두일념(話頭一念)이 무르익어져서 마침내 진리의 

()를 얻게 될 것"이니 여러 대중은 이 공부가 

어렵고  하여 중도에서 놓아 버리거나 포기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쉼 없이 나갈 것" 을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이날  법회에는 동화사 금당선원을 비롯한 산내 암자

에서 수행정진한 각 선원의 스님들과  불자 1천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병신년 하안거 해제법회 종정예하 법어-


석상 칠거(石霜七去) 



[주장자(杖子)를 들어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이르시기를,]

 

맑은  바람이 항상  불고  있고,


밝은 달이 항상 빛나고 있음이라.

 

그러면 맑은 바람이 좋으냐


밝은 달이 좋으냐?

 

[다시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시고,]

 

돌로 만든 사람이 피리를 부니


나무로 만든 여자가 


춤을 벌렁벌렁 춤이로다.




[사진 : 운집한 대중들 사이로 출현하셔서 법회장으로 들어오시는 종정예하






[사진 : 부처님 전에 삼배례 올리시는 종정예하]







[사진 : 종정예하를 사자좌로 모시기 위해 예를 갖추는 시자스님]













[사진 : 법좌에 오르셔서 주장자를 높이 들어 '위없는 법'을 설하시는 종정예하]



바람과 

밝은 달의 경계는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이며,  


돌사람이 피리 불고, 

나무여자가 춤을 추는 것은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이냐?



여기에 대해서 

확연명백(確然明白)할 것 같으면 

모든 성인(聖人)과 더불어 어깨를 같이하고 

억만 년이 다하도록 진리의 낙()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문을 바로 알지 못할 진댄

()도 있고 악()도 있고 ,천상(天上)도 있고 

지옥(地獄)도 있어서 항시 윤회(輪廻)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법이다.


그러한 고로 

부처님께서 오셔서

사바세계 중생(衆生)들에게 

중생의 이 근본고(根本苦)로부터 

영구히 벗어날 수 있는 수행법(修行法)을 

제시하신 것이다.



인생은 

왔기 때문에 결정코 가게 되어 있다


가면 

어느 곳으로 가는가?



가는 

그 곳을 모르니 

죽음에 다다라 공포불안이 엄습해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최상승(最上乘법문을 

착실히 듣고 시간 시간  하루하루 자기사(自己事)를  

밝히는 선수행(禪修行)을 꾸준히 쌓아갈 것 같으면

그 복잡한 세간 살이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온과 

안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죽음에 

이르러서도 마음 가운데 

두려움이나 공포불안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마음 가운데 

오로지 화두 한 생각뿐이면 

사지(四肢)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 오더라도  

거기에 끄달리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맑은 정신에서 

평상시 옷 갈아 입듯이 

태연하게 몸을 바꿀 수 있으므로

금생(今生)에 ()을 세운 대로 

태어나게 되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죽음에 다다라 

정신이 혼미(昏迷)해질 것 같으면

자신의 원()대로 태어나지 못하고 

전생(前生)의 지중한 업()을 좇아서 

지옥으로 가기도 하고 

축생(畜生)에 떨어지기도 한다.


부처님법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조건 절대자를 믿고 교주(敎主)를 

따른다고 해서 천상(天上)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법에서는 과거현재미래

전생(前生)금생(今生)내생(來生)이 

항시 연관되어 있다그래서 고인들께서도,

"전생사(前生事)를 알고자 할진댄 

금생(今生)에 자신이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내생사(來生事)를 알고자 할진댄 

각자가 금생에 얼마만큼 복과 덕을 쌓았으며 

얼마만큼 마음의 지혜를 밝히는 수행을 

하였는가 살펴보라."고 하셨다.



그러니 


모든 결과는 


자신이 지은 대로 오는 것이다.



우리가 

생사안두(生死岸頭)에서 매()하지 않고 

윤회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도

부처님의 신력(神力)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실답게 쌓은 수행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배가 몹시 고플 때 

종일 밥을 쳐다보고 있어 보아야 

주린 고()가 없어지지 않고 

한술 두술 먹어야만 배가 차고 

허기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스스로 닦지 않는한 지혜가 

밝아질 수 없는 법이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봄에 파종을 하고서 거름을 주고

김을 매주고잘 가꾸어야 

가을에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듯이

공부를 지어가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우리가 

애쓰고 애써서 

화두(話頭한생각을  챙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습기(習氣)는 

잠자고화두일념(話頭一念)이 무르익어져서 

마침내 진리의 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여러 대중은 

이 공부가 어렵다고 하여 

중도에서 놓아 버리거나 

포기하지 말고 

한 걸음 한걸음 

쉼 없이 나아가길 바란다.

 



당대(唐代)에 

석상(石霜)선사라는 아주 훌륭한 도인이 계셨는데

전법(傳法)하여 후사(後嗣)를 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열반에 드셨다.


그러고 나니

회중(會中)에서는 뒤를 이을 분을 모시기 위한 

대중공사(大衆公事)가 벌어졌다.


대중을 지도할 수 있는 도안(道眼)이 밝고 

덕망이 높은 훌륭한 큰스님을 모셔야 되겠는데

어느 누가 ()가 장한지 서로 알 수가 없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도인이라야 능히 도인을 안다."

지혜의 눈을 갖춘 이가 있을 것 같으면 

안목자(眼目者)를 바로 알아척 모셨을 것이다


그러나 

점검해 주실 스승이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조실 스님을 한 분 추대하기란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견이 분분하다가

그 회상(會上)에서 다년간 입승(立繩)도 보고 

대중의 존경도 받아오던 노장 스님을 조실에 

모시기로 대중의 공론이 모아졌다.


그런데 

석상 선사의 시자였던 나이 어린 

구봉(九峰)스님이 완강히 반대하면서,

"그렇다면 제가 열반하신 선사의 법문을 

들어서 묻겠사오니만일 선사의 뜻에 

맞게 답하신다면 그 때는 조실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하고는 물음을 던졌다.


"석상 선사께서는 항상 법문하시기를

쉬어가고  쉬어가되 한 생각이 만 년을 가게 하고

찬 재와 마른 나무같이 가며

옛 사당의 향로와 같이 차게 가고

한 필의 흰 비단과 같이 이어가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밝히신 것입니까?"


이에 조실로 추대 받던 노장 스님이,

"그 법문은 일색변사(一色邊事)를 밝힌 것이다."

라고 말하니시자가 듣고는 긍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석상 선사의 뜻을 모르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그 노장 스님이,

"그러면 내가 향()에 불을 붙여서 

향 연기가 피어오를 동안에 

이 몸뚱이를 벗어 보이겠다

만약 내가 석상 선사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가 일어날 때 좌탈(坐脫)하지 못할 것이다."

하고는 향에 불을 붙여 한 줄기 향연(香煙)이 

피어오르자 그만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


이에 

구봉 스님이 다가가서 그 스님의 등을 툭툭 치면서,

"앉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몸뚱이를 벗는 일은 

없지 아니하나석상 선사의 근본 뜻은 꿈에도 

보지 못하셨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앉아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몸뚱이를 벗는 

이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장한 일이다

그러나 조사(祖師스님들께서 법문하신 

구절구절을 꿰뚫는그러한 심오한 진리의 

눈이 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후래(後來)에 

천동 각(天童  覺)선사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멋지게 식파(識破)하신 대문이 있다.

 

月 巢 鶴 作 千 年 夢   월소학작천년몽

雪 屋 人 迷 一 色 空   설옥인미일색공

坐 斷 十 方 猶 點 額   좌단시방유점액

密 移 一 步 看 飛 龍   밀이일보간비룡

 

어스름  달빛 속에 학이 천 년의 꿈을 꿈이요

눈집의 사람이 백색의 공적에 미함이니

앉아서 시방을 끊는다 해도 아직은 점액일세.

한 걸음 더 슬쩍 나아가야 훨훨 나는 용을 보리라.

 

 

일색변사(一色邊事)의 대답으로는

잉어가 못 둑에 이마를 박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석상 선사께서 하신 

법문의 심오한 진리는 어디에 있는고?


棒 下 無 生 印

臨 機 不 讓 師

 

이 주장자 아래 남이 없는 진리는

기틀에 다다라 스승에게 사양하지 않음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하시다.]




▶▶▶▶ 법회장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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