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여래 근본도량, 민족의 영산 팔공총림 동화사

동화사사적비

관리자 | 2018.10.04 16:43 | 조회 2580
  • 동화사사적비
신라 소지왕 15년(493) 극달(極達)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신라 흥덕왕 7년(832) 심지(心地)대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롭게 꽃이 피었다하여 동화사(桐華寺)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비개(碑蓋)를 용으로 장식하였으며 넓은 비면에 내용을 적고 있다. 동화사사적비는 훼손되어 1931년 3월, 주지 황보응스님께서 조성하였고 비문은 자당거사 김정래가 지었으며, 긍석 김진만 선생님께서 글을 쓰셨다. 『조선불교선교양종 제일수찰 대본산 경상북도··· 동화사적비명』이란 제목으로 동화사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다.비의 형태가 거대한 화강암을 좌우에 각각 2개씩 4각형의 돌을 세웠으며, 우측에는 천장비석(天藏碑石) 기사유황(記事有惶), 좌측에는 자안시중(慈眼視衆) 복위무량(福聚無量)이라 적혀있다. 천장비석 기사유황의 의미는 하늘이 감춰둔 신비로운 돌에 사적비를 적으니 빛남이 있고, 자안시중 복취무의 뜻은 자애로운 눈으로 중생들을 보살핀다면 한량없는 복덕이 모여들 것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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