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약사여래 근본도량, 민족의 영산 팔공총림 동화사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 상당법어

관리자 | 2015.05.22 19:48 | 조회 1960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 상당법어


 

[ 상당하시어 불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

 

    古佛未生是誰主〈고불미생시수주〉오
    寥寥寂寂體平安〈요요적적체평안〉이라.
    大千世界共一家〈대천세계공일가〉요,
    情與無情同一體〈정여무정동일체〉로다.

    옛 부처가 나기 전에 누가 우주의 주인공인고?
    고요하고 고요해서 그 체성은 평안한지라.
    온 세계가 한 집이요
    정이 있고 정이 없는 모든 만물이 한 몸이로다.

 

대중 여러분께서는, 방금 산승이 말한 그 주인공을 아시겠습니까?
이 주인공은 천지만물의 근본이요, 일체중생의 마음자리입니다. 이 근본자리는 텅 비어 고요함이나 분명하고 분명한 자리입니다.


온갖 망령된 생각들을 즉각 내려놓는다면, 바로 그 자리가 본래의 마음자리며 본래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미혹하면 중생이요, 항상 밝아 있으면 부처이기에, 범부와 성인이 근본자리에서는 둘이 아님이요, 그대로 광명이요, 생명이요, 평화요, 대자유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마음을 깨달아 참나를 찾으면 영원한 행복과 대지혜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곧 부처요, 사람이 곧 부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곧 부처임을 깨달아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삶을 사는 일이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서원입니다.

옛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가는 곳 마다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리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모든 번뇌망상을 놓아버리고 참나를 깨달아 세상의 주인이 되면 언제 어디서나 걸림 없는 대자재의 삶을 살게 됩니다.

번뇌에 미혹할 때는 고해의 사바세계가 있으나, 참나를 깨달으면 시방이 공하여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바로 해탈열반의 삶을 실현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의 원력으로 중생을 위해 겨자씨만한 땅에도 피를 흘리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셨으니,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말씀이 오늘날 이 지구촌 인류에게 장군죽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 혼자만 구원 받으면 되고,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오늘의 사회풍조 속에서 인격도야의 실천행이 더욱 절실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참나를 깨달아 영원한 행복과 대지혜와 자비를 얻고자 하면 어떠한 자세를 갖추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느냐? 이에 대해 산승이 만인에게 여섯 가지의 나아갈 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보시로서, 만복과 덕행을 쌓아야 함이요,
둘째는 지계로서, 청정하고 성실하여 품행을 단정히 해야 함이요,
셋째는 인욕으로, 마음에 일어나는 온갖 분별심을 이겨내어 장애를 걷어내는 것이요,
넷째는 정진으로,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잘 참구하여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닦는 것이요,
다섯째는 선정으로, 그렇게 마음을 닦아 온갖 두려움을 없애 참된 평화를 얻는 것이요,
여섯째는 지혜로, 일체를 다 알아 무애자재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 나아갈 길을 지극한 마음으로 금쪽 같이 받아 행하시면 필경에 진리를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대중의 화합과 행복한 정토사회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산승은 금일 이 무차법회의 자리를 빌어 지구촌의 참된 평화와 인류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화두참선을 통하여 참나를 깨닫는 ‘간화선’이라는 마음 닦는 수행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인류문화의 정수인 간화선은 어떻게 닦는 것인가? 간화선은 화두를 챙겨 간절히 의심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러니 일상생활 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이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챙기고 의심할지니, 오로지 간절한 화두의심 한 생각에 푸욱 빠지도록 하루에도 천번 만번 반복해서 챙기고 의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득 일념삼매에 들어 크게 죽었다가 홀연히 살아나게 되면 마침내 마음의 고향에 이르러 대지혜와 대안락, 대자유와 대평화를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나를 깨닫는 그 속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복락이 있는 것이니, 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지중하고 지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면 모든 분들께 대오견성의 희망을 드리고자, 간화선 참선수행을 잘 해서 진리의 경지를 깨달아 그 살림살이를 자유자재로 쓰다 가신 옛 도인들의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셨던 경허 선사의 상수제자인 혜월(慧月) 선사로부터 심인법(心印法)을 전해 받은 77대 조사인 운봉(雲峰) 선사라는 대도인이 계셨습니다. 운봉 선사는 법을 이은 뒤에도 제방 선원을 두루 다니시면서 한 철 한 철 여법히 수행에 몰두했습니다.


한번은 경기도 망월사에서 “삼십 년 결사(結社)를 하자” 하여 제방에서 발심한 스님들이 40여 명이 모였습니다. 당시에 조실스님으로는 용성(龍城) 선사를 모셨고, 선덕으로는 훗날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石友) 선사를 모셨습니다. 입승은 운봉 선사께서 맡아 모든 대중이 밤과 낮으로 여법히 참선정진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법회가 있어 용성 조실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셔서 법문하시기를,
“나의 참모습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함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모든 도인 스님들도 보지 못함이니, 여기에 모인 모든 대중은 어느 곳에서 나를 보려는고?”
하고 멋진 법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답이 없는 가운데 운봉 선사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답을 하였습니다.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이렇게 멋진 답을 하니, 용성 선사께서는 아무런 말없이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대목을 가지고 40여 년 전에 산승의 스승이자, 운봉 선사의 법제자이신 향곡(香谷) 선사께서 산승에게 물으시기를,
“만약 진제 네가 당시의 용성 선사가 되었다면, 운봉 선사가 ‘유리 독 속에 몸을 감췄다’고 답할 때에 무엇이라 점검하고 법상에서 내려가겠는고?”
하시니 산승이 즉시 답하기를,
“사자가 멋진 답을 하셨습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매우 기뻐하셨으니, 전광석화와 같은 바른 안목을 갖춘다는 것은 천고에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법에 대한 스승과 제자의 안목이 졸탁동시에 이루어질 때 점검과 인가가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한국의 신라와 같은 시대인,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는 위대한 방거사(龐居士) 일가족 도인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선법이 유래한 후로, 세속 사람들 가운데에 방거사의 안목을 능가할 만한 안목을 갖춘 사람은 드뭅니다.
당시는 마조(馬祖)·석두(石頭) 선사 두 분이 쌍벽을 이루어 당나라 천지에 선법을 크게 선양하시던 때였는데, 신심 있고 용맹심 있는 스님들과 마을 신도들은 모두 두 분 도인을 친견하여 법문을 듣고 지도를 받았습니다.

하루는 방거사가 큰 신심과 용기를 내어 석두 선사를 친견하러 가서 예 삼배를 올리고 여쭙기를,
“만 가지 진리의 법으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하는 자, 이 누구입니까?”
하고 아주 고준한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석두선사께서는 묻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거사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여기에서 방거사는 홀연히 진리의 눈이 팔부가 열렸습니다.

“선사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석두 선사께 큰절을 올려 하직인사를 하고는, 그 걸음으로 수백 리 길을 걸어서 마조 선사를 친견하러 갔습니다.
마조 선사 처소에 이르러 예 삼배를 올리고 종전과 같이 여쭙기를,
“만 가지 진리의 법으로 더불어 벗을 삼지 아니하는 자, 이 누구입니까?” 하니, 마조선사께서
“그대가 서강수(西江水) 큰 강물을 다 마시고 오면 그대를 향해 일러 주리라.” 하시는 이 고준한 한 마디에 지혜의 눈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스님들과 동일한 진리의 안목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조 선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방거사가 그런 후로 집에 돌아와서 대대로 물려받은 가보와 재산을 전부 마을 사람들에게 흔연히 보시하고는, 자신은 가족과 함께 개울가에 오두막집을 한 칸 지어놓고, 산죽을 베어다가 쌀을 이는 조리를 만들어 팔아서 생활하면서, 온 가족이 참선수행에 몰두하였습니다.
부인보살과 딸이 하나 있었는데, 부인보살도 참선 수행하여 대도를 이루고, 딸도 결혼하지 않고 참선 수행하여 마침내 온 가족이 진리의 최고 안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방거사 일가족이 다 견성을 하여 이렇게 멋지게 생활한다는 소문이 중국 당나라 천하에 분분하니, 많은 도인들이 방문하여 오갔습니다.

하루는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께서 방거사를 찾아오셨는데, 마침 영조가 사립 앞 우물에서 채소를 씻고 있으니 천연 선사께서 묻기를,
“방거사 있느냐?” 하시니, 영조가 채소 씻던 동작을 멈추고 일어서서 가슴에 양손을 얹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천연 선사께서 즉시 그 뜻을 아시고 다시 어떻게 나오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방거사 있느냐?” 하고 재차 물으시니, 영조가 가슴에 얹은 양손을 내리고 채소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에 천연 선사께서도 즉시 되돌아가셨습니다.

말이 없는 가운데 말이 분명하니, 이러한 문답을 바로 볼 줄 알아야 진리의 고준한 안목을 갖추게 되고 만 사람을 진리의 도에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방거사가 가족과 함께 방에서 쉬고 있다가 불쑥 한 마디 던지기를,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일백 석이나 되는 기름통의 기름을 펴는 것과 같구나.” 하니, 방거사 부인보살이 그 말을 받아서 하는 말이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끝이 모두 불법의 진리이구나.” 하고 반대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딸 영조가 석화전광으로 받아서,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피곤하면 잠자고 목마르면 차를 마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모이신 모든 대중은 방거사 일가족을 아시겠습니까?

방거사가 말한 “어렵고 어려움이여, 높은 나무 위에 백 통의 기름을 펴는 것과 같구나.” 한 것은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이며, 방거사 부인보살이 말한 “쉽고 쉬움이여, 일백 가지 풀끝이 모두 불법의 진리이구나.” 한 것은 어떠한 진리를 표현한 것입니까?
또, 영조가 말한 “어렵지도 아니하고 쉽지도 아니함이여, 피곤하면 잠자고 목마르면 차를 마신다.” 한 것은 어떠한 진리의 세계를 드러낸 것입니까?

이 세 마디에 모든 성인과 모든 도인께서 설하신 법문이 다 들어 있으니, 이것을 가려낼 줄 안다면 모든 성인과 모든 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답을 하실 분 있습니까?

[ 잠시 후 ]


그러면 온 세계가 간화선의 향기에 흠뻑 젖어 안락의 고향에 머물고 일체 중생이 만복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금일 산승이 한 팔을 걷어붙이고 이 방거사 일가족의 심오한 법문을 점검하여, 모든 인류에게 진리의 법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만약 산승이, 방거사 일가족이 한 마디씩 할 때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좋은 차를 다려서 한 잔 씩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차를 한 잔씩 드린 것은 법문을 잘 해서 드린 것입니까? 아니면 잘 못해서 드린 것입니까?

대중은 아시겠습니까?

[ 잠시 후 ]


우리 조국에서 산화하신 영령들,
거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신 모든 영가분들과
네팔 대지진 참사로 희생되신 모든 영가분들,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희생되신 모든 영가들께서도 삼독의 애착과 집착을 다 내려놓고 부처님의 극락정토에서 대안락을 누리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진리의 한 마디를 선사하고자 하노니 잘 받아가지시기 바랍니다.

  

    來年更有新條在〈내년갱유신조재〉하야
    惱亂春風卒未休〈뇌란춘풍졸미휴〉로다.

    내년에 다시 나뭇가지에 새 움이 자라서
    봄바람에 어지러이 쉬지 못함이로다.


금일 이곳 광화문 광화문광장에 모이신 모든 분들, 이 한 마디를 잘 간직하셔서 무한한 진리의 낙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불자로 법상을 한 번 치고 하좌하시다. ]

2015년 5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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