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기약사여래 근본도량, 민족의 영산 팔공총림 동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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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
- 첫번째로 동화사는 493년에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그 뒤 832년(신라 흥덕왕 7년)에 심지 왕사(心地王師)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 두번째로 〈삼국유사〉에는 진표(眞表) 율사에게서 영심(永深)에게 전하였던 불간자(佛簡子)를 심지(心地)가 다시 받은 뒤, 팔공산에 와서 불간자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이룩하니 곧 동화사 첨당 북쪽의 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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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극달 화상의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기이므로 공인되기 전에 법상종의 성격을 띤 유가사라는 사명이 붙여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심지의 중창을 실질적인 창건으로 보는 것이 보통의 견해이다.
창건 뒤 863년(신라 경문왕 3년) 경문왕이 비로암 3층석탑과 석조비로자나불을 조성하였으며, 934년(경순왕 7년)에는 선사 영조가 절을 중창하였다. 고려에 들어서는 1036년(고려 정조 2년) 영통사, 숭법사, 부인사 등과 함께 경∙율을 시험하는 사찰로 지정되었으며, 1190년(고려 명종 20년)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 1294년(충렬왕 20년)에는 국사 홍진이 절을 중건하였다. 1319년(충숙왕 6년)에는 현승이 통도사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5과를 얻어와 이를 봉안하고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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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1465년(세조 10년) 금당(金堂)을 중건하였으며, 1606년(선조 39년)에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절을 중창하였고, 이어 학인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유정은 영남도총섭으로 절에서 승군을 지휘했으며 사서원은 격문을 지어 많은 의병들을 모집, 절에서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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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일대 55개의 사찰을 거느렸던 대본산(大本山)이었으며, 현재는 대구광역시와 청도군, 칠곡군, 성주군의 사암(寺庵)을 관장하고 있다. 근래 평화통일의 발원을 담은 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