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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동안거해제법회 봉행 --종정예하 법어

관리자 | 2019.02.24 18:16 | 조회 993




무술년 동안거 해제법어-대한불교조계종 종정예하-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고목용음진견도(古木龍吟眞見道)

촉루식진안초명(髑髏識盡眼初明)

소식진시희식진(消息盡時喜息盡)

당인나변탁중청(當人那辨濁中淸)

마른 나무에 용이 소리를 내니 참으로 도를 봄이요

해골 뼈다귀에 분별이 다하여야만 진리의 눈이 처음 밝음이라.

소식이 다한 때에 기쁜 소식이 다했거늘

마땅히 사람이 이에 탁한 가운데 맑은 것을 가릴꼬?




금일(今日)

무술년(戊戌年) 동안거(冬安居) 해제일(解制日)이라.

결제에 임한 이래로 하루가 한 달이 되고

어느 듯 삼동구순(三冬九旬)이 지나고

해제일이 도래했음이로다.


 

해제일에 이른 지금까지 방장실을 찾아와서

대장부의 기개(幾個)를 펼치는 이를 보지 못함은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온갖 분별(分別)과 망상(妄想)과 혼침(昏沈)

시간을 다 빼앗겨서 화두일념(話頭一念)이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이 석 달간 얼마만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두를

챙기고 의심했는지 각자가 스스로 돌이켜볼지어다.



견성법(見性法)은 일념삼매의 과정이 오지 않으면,

라는 생각의 분별심이 터럭만큼이라도 남아 있으면

절대 진리의 문을 통과할 수 없음이라.


화두일념이 지속되어 보는 찰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고 태산이 무너져야만

진리의 세계와 대면(對面)하는 것이다.



이 일념삼매(一念三昧)를 이루기 위해서는

몸에 대한 애착과 일체분별과 시비장단(是非長短)을 놓아버리고 ,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시끄러우나 고요하나 사위의(四威儀 :

···)가운데 간절한 화두의심이 지속이 되어서

모든 습기(習氣)와 반연(攀緣)은 재[]가 되어야 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대중은 해제에 상관치 말고

일념삼매가 되도록 혼신(渾身)의 노력을 쏟을지어다.

 



중국의 당나라시대는 선가오종(禪家五宗)이 성립하여

()의 황금시대를 구가(謳歌)하던 때였다.

그 중에 운문종(雲門宗)의 문을 연 운문선사(雲門禪師)

동진(童眞)으로 출가하여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신심과

수행으로 일관하였다.

 

당시의 선지식인 목주선사를 참례하고는

팔부(八部)의 안목(眼目)이 열렸고,

설봉선사의 회상(會上)에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여

인가(認可)를 받고 법()을 잇게 되었다.



 

그 후 운문선사의 법이 널리 퍼져서

선사의 법제자가 20명에 이르니, 운문종파를 이루게 되고

선사의 선법(禪法)중국천하를 풍미(風靡)하였다.


세월이 흘러 운문(雲門) 선사께서 세연(世緣)이 다해 가니,

제자들을 모아 놓고 세 가지 법문을 물으셨다.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도()인가?”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인가?”

어떠한 것이 진리의 보검인가?”


이 물음에 여러 제자들이 훌륭한 답을 하였다.




그 중에서 파릉(巴陵)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떠한 것이 부처님의 진리의 도()인가?”

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빠졌습니다.”


어떠한 것이 제바종(提婆宗) 인가?”

은쟁반 위에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제바종이란?

가나제바 존자의 재세시(在世時) 인도에는 96종의 외도들이 서로 자기들의 종교가 최고라고 주장하여 혼란스러웠다. 이에 국왕이 모든 외도들을 모아 논쟁을 시켰는데, 이때 용수보살의 법을 이은 가나제바 존자가 뛰어난 지혜와 방편으로 96종의 외도들을 모두 조복(調伏) 받았다.이에 왕이 오직 가나제바 존자의 법()만을 남겨두어 제바종의 종지(宗旨)가 인도전역에서 크게 떨쳐졌다.


어떠한 것이 진리의 보검인가?”

산호(珊瑚)나무 가지가지에 달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운문 선사께서 이 답처(答處)를 듣고 매우 기뻐하시며 제자들에게

"내가 열반(涅槃)에 든 후, 너희들은 기일(忌日)에 제사상에다

갖가지 음식을 차리지 말고 항상 이 세 마디 법문을 일러주길 바란다."

라고 이르셨다.

 

요즈음의 선지식들이 당기(當機)에 다다라 주저하게 되는 것은

견처(見處), 살림살이도 다 고인(古人)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무변대도(無邊大道)의 불법 진리를 바로 알려면

고인들의 법문 하나하나를 다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고인들의 살림살이가 따로 있고

현재 우리가 공부한 살림살이가

따로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견성법(見性法)이란

항상 동일한 것이어서, 만일 서로 다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어느 한 쪽에 허물이 있는 것이다.



그간 무수한 도인들이

각자가 깨달은 경지(境地)를 기량(氣量)대로 써왔다.

제 아무리 약삭빠른 이라도 엿볼 수 없고사량분별을

붙일 수 없게끔 무진삼매(無盡三昧)의 공안을 베풀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공안에 대하여

확연명백하지 못할 것 같으면,

크게 쉬는 땅을 얻었다고 할 수가 없고,

고인들과 같은 경지를 수용할 수도 없다.


그러니 모든 참학인(參學人)

고인의 경지에 근간(根幹)을 두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베풀어져 있는 공안(公案)의 그물을 다 뚫어 지나가야 한다.




이처럼 당기일구(當機一句)의 기틀을 갖추지 못했다면,

접인(接人)할 능력도 없을뿐더러 알았다고 하는 것도

모두 망령된 사견(邪見)에 지나지 않는다.

고인들의 전지(田地)에는 꿈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이여

이 운문삼전어 (雲門三轉語) 법문을 안다면

한 산중의 방장(方丈)이 될 자격이 있음이라

답할 자가 있으면 답을 가지고 오너라.


필경(畢竟)에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 하는고?

무운생령상 無雲生嶺上하고

유월락파심 唯月落波心이로다

구름이 걷히니 산마루가 드러나고

밝은 달은 물 위에 떠있음이로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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