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고승약사여래 근본도량, 민족의 영산 팔공총림 동화사

홍진국사 혜영

고려시대 법상종은 고려 불교의 3대 종파 가운데 하나로서 흔히 유가종, 자은종이라고도 한다. 동화사는 법상종의 핵심 사찰이었다. 13세기 중엽 법상종의 대덕이던 홍진국사 혜영스님이 동화사에서 활동하였으며, 스님이 입적하신 후에는 1298년에 스님의 비가 동화사에 조성되었다. 비문의 제목은 〈高麗國大瑜伽桐華寺住持五敎僧統普慈國尊贈諡弘眞碑銘(고려국 대유가 동화사 주지 오교승통 보자국존 증시홍진비명)〉이다. 안타깝게도 비는 사라졌으나 탑본의 일부가 전하고 부도는 동화사 경내에 남아 있다. 탑본에 ‘대유가동화사’라고 하여 동화사가 법상종의 대찰이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혜영스님의 성은 강씨(康氏)로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한림원 자원(子元)의 아들이다. 11세에 출가하여 남백월산(南白月山)의 수좌(首座) 충연(沖淵)의 제자가 되었고, 17세에 왕륜사 선불장에 합격하여 흥덕사(興德寺)에 머물렀다.

1259년 선종의 높은 승계인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1263년에 수좌가 되었다. 1267년 속리사(俗離寺)이 이주하였으며, 1269년 승통이 되었다. 스님이 1274년 통도사에서 사리 여러 매를 얻어 항상 좌우에 두었더니 많은 분신사리가 생겨났으며, 이를 구하는 사람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 해에 중흥사(重興寺)로 거처를 옮기고, 왕명에 의하여 9년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1285년에는 유가사로 옮겼고, 1290년 사경승(寫經僧) 100명을 데리고 원나라에 들어갔다. 원나라 황제 세조가 스님을 경주사(慶州寺)에 머무르게 하였고, 만안사(萬安寺) 당두(堂頭)의 청으로 《인왕경》을 강의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이듬해 금니(金泥)로 대장경을 사경하고 귀국하였다.

1292년 국존에 봉해져 보자(普慈)라는 법호를 받고 오교도승통이 되어 동화사의 주지를 맡았다. 홍진국사가 동화사 주지로 임명될 때 충렬왕은 신하를 데리고 내려와 오배지례(五拜之禮)를 행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국사와 왕사는 왕에게 스승의 예를 받는 높은 위치였다.

1294년 1월 24일 단정히 앉아 《화엄경》 〈십지품〉을 읽다가 입적하였다. 세수 67세, 법랍 56년이었다. 시호는 홍진, 탑호는 진응(眞應)이다. 문인(門人)으로는 금산사 승통 효도(孝棹) 등이 있다.

스님의 저서로 《백의해(白衣解)》 1권 1책이 목판본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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