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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연등달고 시주하고 절밥도 못 얻어먹고.

kimsunbee | 2019.05.24 17:17 | 조회 137

28 연등 달고 시주도 하고는 절밥도 못 얻어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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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초파일 며칠 전 운문사 내원암에 가서 연등 달고 시주는 했으나, 절밥도 못 먹고 왔다, 너무 섭섭하고 아쉬워 초파일 일부러 점심시간 맞추어 다시 내원암에 가서 밥 달라 하고 비빔밥 한 그릇 먹었다. 밥 한 그릇 먹으니 그래도 시원 섭섭함이 가시고 내원암에 왔는 참배자로 내원암 운치를 감상케 했다. 그리고 본 일로 절에 대한 나의 인식이 여러 분야를 생각하게 했다. 필자는 불교에 대한 용어나 법도를 잘 모른다, 그러므로 독자님은 잘못된 법도나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이해하여 주시길 바란다. 절밥을 못 먹었는 사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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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와 함께 내원암에 가다.

초파일 3일전인가, 친구에게 운문사 절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내일 ㅁㅇㅇ도 가는데 10시 쯤 시간을 비워라했다. 그리고 10시에 청도에서 운문사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한 친구가 내게 등을 다느냐 물었다. 그래서 등은 달지 않고 그냥 가본다고 했다. 이 친구들은 등을 달기 위해서 운문사에 가는 것인 것 같고 나는 그냥 가보는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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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경내와 내원암 입구가 참으로 좋더라.

청도에 살지만 자주가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갔는 것이 5년 전이다. 내원암은 처음이고, 이러한 암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나의 뇌리 속에는 북대암과 사리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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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건은 발생하고

법당에 가서 절을 하고 시주를 하는데, 이게 고민이다. 과연 얼마를 시주하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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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 가니 스님 한분이 염불하고 계시더라, 엎드려 절을 하고, 절을 하면서도 얼마를 시주하여야 하나, 누가 알 사람은 없지만 고민 고민이더라, 1만원 하려니 그렇고 3만원하려니 그렇고, 연등을 달지도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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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넙죽 넙죽 절을 잘한다, 한 친구는 키가 180정도에 100kg인데도 절을 잘하더라. 우리 나이에는 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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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면서 결정한 것이 등도 달지 않고 처음 왔으니 큰마음 먹고 5만원이라는 거금을 시주하기로 했다. 시주함에 5만원 지폐를 넣으니 절에 왔다는 의식이 깔리더라.

친구와 법당을 나서면서 나는 법당 뒤를 둘러 봤다. 뒤가 어떤지, 그런데 친구들은 그냥 아래로 내려가더라. 법당 뒤를 둘러보고 법당을 내려오니 친구들이 어디 갔는지 없었다. 친구를 찾아 이리 저리 해매다. 친구 신발이 보이고 좀 있으니 친구 음성이 들렸다. 친구 신발이 오면서 보니 좀 특이한 신발이였는데, 이것도 친구를 찾는다고 정신이 없어서 친구 신발인지 아닌지 긴가 민가 하더라. 목소리와 신발을 보고 무조건 들어 가봤다. 여기가 종무소라고 간판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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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 내부는 조그마했는데 스님 한분은 서서 계셨고, 한분은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서있는 분이 등을 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마누라가 다른 절에 등을 달았기 때문에 달지 않는다고 하니,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자판기 커피와 초코파이 인지 뭔지를 하나 먹고 있었다. 그러자 서가 있었는 스님은 밖으로 나가셨다. 그런데 한 친구가 하는 말이, 여기까지 왔는데 절에 이름이나 쓰고 가야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그러지 하면서 앉아 있는 스님 곁으로 가서 주소와 이름을 아르켜 주니 스님이 받아 쓰는 것이다. 쓰는 모습을 보고 내가 다시 받아서 주소를 기입하니 가족들 이름을 대라고 한다. 그제야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고 등을 달아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더라. 물론 이것은 강요가 전혀 아니다. 나는 단순이 주소와 이름을 등제하는 것으로 생각 했는데 친구가 바람을 잡기에 응해 버린 것이다. 가족 이름을 등재하라는 스님 말씀을 듣고 5만원에 가족이름까지 올려야 하나, 이 말은 5만원에 가족 이름 모두 올리는 것은 너무 금액이 작다는 표현이였는데 친구와 스님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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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록을 마치고 친구에게 물었다. 주지 스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그러자 하는 말이 아까 서가 있었는 분이 주지 스님이란다. 내가 뭐 이라노 인사도 없이,하니까 앉아 있는 스님이 (행정엄무를 보시는) “이래 이래 보면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말을 잘못 들었나 싶더라. 佛家法道가 모두 이러한지. 그래도 운문사는 대한민국에서 이름 있는 사찰이고 내원암 역시 운문사 내에서 이름이 있는 암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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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은 참 이상하다.

처음 오는 보살이라면 주지와 서로가 인사를 해야 되지 않나. 친구들이 잘 알고 있는 사이라면 친구가 먼저, 이 친구는 같이 왔는 친구라고 주지스님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나. 그런데 우째된 것인지, 이 두 친구는 소개를 시켜 주지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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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소개를 하지 않는다면 스님께서 물어 봐야 하지 않나. 자신은 내원암 주지이고, 앉아 있는 스님은 도방을 맡아 하는 스님이라고, 내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닌데, 이건 禮儀고 뭐고도 없는 무례한 이들이 아닌가. 이야, 이렇다면 속세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퇴출되어 山寺에 들어 왔는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이후에도 계속 생각하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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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들도 문제가 같이 동행했는데,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하찮은 친구이지만 소개는 시켜주어 하고, 소개하기가 싫다면 같이 동행을 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인 기본 를 몰라서 하지 아니했다면 앞으로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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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무소를 나서면서 친구들이 뭐를 하든지 말든지 내원암 경내를 둘러 봤다. 내원암 동남편 계곡이 특이 했다. 계곡에 물이 흐르는데 계곡바닥이 암반이고, 자갈과 흙은 없고 아주 맑은 계곡이다. 여름에는 참으로 좋겠더라,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니 노승과 친구가 잘 아는 사이인 것이다. 서로가 담소를 하더라. 내가 경내를 둘러보고 오니 친구들은 가자고 한다. 시간이 12시인데 종무소 스님께서 점심 먹고 가라고 했는데 이 친구들은 그냥 가자고 재촉을 한다. 할 수 없이 차에 올라타고 오는데 내원암과 운문사 본사는 곁에 있는데 여기에도 들러지 않고 청도로 직행을 한다. 내원 참. 시주와 연등에 거금 10만원이나 하고 점심때가 되어도 스님이 권하는 공양도 박차고 하산한다.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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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산하는 차 중에서

친구들에게, 절에 오면 주지 스님을 배알하고, 좋은 말씀도 듣고, 공양도 하고 사색도 하고 좀 머물다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해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기가차서, 그러면 운문사 본당에라도 들러야 하지 않나 해도 막무가내다. 아무리 자주 운문사에 왔다고 해도 나는 5년 만에 처음이고 그것도 5년전 지방 선거철에 유세차량과 왔는 것이 전부이며, 그 때도 주지 스님과 대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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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쉬워하니, 친구들이 하는 말이 저기에 가면 김사장 니 껌뻑 죽는 여자들이 2명이나 있는데 니 죽을 기라고 한다, 그래도 여자는 여자이고, 절을 찾는 것은 잠시 수행과 작은 수도가 아닌가, 친구들이 죽이는 여성을 말하든지 말든지 아쉬운 친묵이 이 좋은 계절에 운문사 관내 숲속을 빠져 나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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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죽인다는 여자들이 있는 곳은 주차장 커피숍이였는데.

여자 둘이 커피숍을 운영하는 모양데, 친구들과 막연한 사이인 것 같다. 서로가 담소를 하고, 킥킥되고 좋아 한다. 내사 밥맛이 없는 여자이고, 그냥 평범한 수준의 커피숍 여성들이며, 내원암에서 밤도 못 먹고 와서 그런지, 자기들끼리 킥킥되며 좋아 하지만 나에겐 보이지 않는 거리와 막이 처져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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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 중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는데.

운문사에서 출발 20분 쯤 되었을까, 집으로 오는 도중에 어느 중화요리 식당 앞에 차가 서는데. 점심을 먹자고 하는데, 내가, 아까 절에서 먹어도 되는데, 무슨 점심식사인가 하니, 점심을 먹어야 한다나, 그렇다면 절에 갔다 오는데 한식이나 하지라고. 말해도 통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라 중회요리식당에 앉을 자리가 없다. 할 수 없이 다른 식당으로 갔는데, 식사 후 점심 값은 내가 내어야 할 판이다. 커피숍에서 한 친구가 내었고, 한 친구는 차량 제공자이고, 식대비는 내가 내어야 하는 것이다. 식대비가 24,000원이였다, 청도 읍내로 들어와 친구 가게에서 커피를 또 시키니, 이제 커피 값은 차주가 지불하는데, 문제는 2시 쯤 되었는데, 이날 아가씨가 영업이 부진하여 5만원권에 잔돈 지불할 것이 없어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내가 1만원권을 지불했다. 그러니 이날하루 13만원이라는 거금을 운문사 내원암 방문으로 소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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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원은 내게 얼마나 큰 돈이냐 하면, 시장날 자층파(쪽파,실파)를 청도 시장날 팔았는데 한단에 2,000원으로 한단 량은 마트에 파는 용량과 비슷한데 무게가 대충 900g~1kg이다. 당시에 청도 지역 마트에서는 3,800~4,500원 했지만 청도 시장에서는 최상품 쪽파를 계속 2,000원에 촌로는 팔았다, 마트 가격의 절반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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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러 하니, 13만원은 쪽파 65단 가격이다. 이것은 두 장날 쪽파 팔아야 하는 것이다. 쪽파 생산과 힘든 포장, 판매 과정을 거치면 노동의 대가도 없는 바보축구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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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쪽파 파는 것을 생각하면 다방에서 커피 한잔도 못 먹는다. 커피 한잔에 청도에서는 통상 2,000원이고, 경로는 1,000원인데, 초로는 아직 경로가 되기 싫더라. 친구 일부는 경로에 가입한 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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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내가 바보 축구 짓인가, 친구들이 잘못된 행동인가, 생각하게 하더라.

친구들은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올바르다고 뇌리에 콱 박혀 있더라, 아무리 설명과 설득을 한다고 하더라도 먹혀 들어가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니 이 친구들은 친구들이고 나는 나다. 나는 내 사고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각인되더라, 그래서 다음에는 내원암에 혼자 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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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에 갔다 오고 나서 한 친구에게 사실을 말하니 이게 가관이다, 한 친구는 이 친구들과 같은 생각을 한다. 뭘라고 중을 만나 보노, 절이나(건물) 둘러 보고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 경치나 좋은가 생각하면 되고 법당에 절하고 시주 하는 것도 5만원은 미친 짓이다, 그렇다고 중이 아나, 1,000원만 놓고 절하면 되는데, 하는 것이라, 그래도 그렇게 해도 되나 하니까”, 니 미쳤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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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친구는, 전화로 내원암 사건을 말하니.

이 친구 왈, 그 친구들과 같이 가지마라, 하는 것이다.

사고가 극과 극이다. 같은 나이에 살아가면서 사고가 이토록 차이가 나더라. 이 친구는 도시인 경산시에 사는데, 코드가 안 맞으면 철저히 배격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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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본 건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더라,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들과는 거리감 없이 지내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니 내가 주변인을 선별하지 않고 아무나 가까이 하고 막연하게 지내는 나의 처세술에 문제가 있더라. 아니면 아니다 라고 냉정하게 잘라야 하는데 내게는 이것이 아니 되더라. 그러니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주변에 통하지만 실속이 없다. 어느 친구는 사람을 가려가며 사귀던데 나는 구별 없이 신경도 쓰지 않고 이도 좋다 저도 좋다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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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느 정도 사람을 가리지 않는지 하면, 내가 조그마한 농약사를 하는데 아무도 농약을 주지 않으려 하는 신용불량자에게 외상으로 주고 15년 전 640만원 단 1원도 못 받았다. 본인이 신용불량자라고 말을 했는데도 설마 약값은 주겠지 하며

주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하루에 몇 번이고 들락말락 하는 청도 시장판 노숙자와 다름이 없고 알콜 중독자와 어울리고 시장판 윷놀이 판에 한판 하는 자이고 장날마다 장판에 나오고 평일에도 시장판에서 놀며 일도 하지 않는 자에게 농약을 주고 2017년도 농약값을 아직도 받지 못하고, 내용증명서도 보내 받지만 기척도 없다. 나는 이래 저래 외상값 받지 못한 금액이 컴퓨터 조회 해보니 18년도에 14천이 넘더라, 18년도 말에 회수하지 못하는 소액금액은 청산해버렸다. 이것은 나의 성격상 문제이다. 나는 똑똑한 농민들에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 같은 어리숙한 농민들에게 계속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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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에 이런 일이 있다.

50이 넘어도 장가를 가지 못하고 혼자 사는데 사람이 좀 모자라면서 결단력도 없는 자인데 살아가려니, 방법은 남의 토지를 임차해야 하는데, 이 모자라는 자가 복숭아밭과 감밭을 얻었기에 또 농약을 주었다. 이미 17년 이전 농약 미수금도 있는데도 농약을 주었다. 이 자 역시 농약대금을 주지 않고 있다. 수십차래 독촉을 해도 반응이 없다. 찾아 가보니 집은 엉망진창이고, 잘 가는 곳이 소먹이는 집에 잡부를 하는데, 일당도 받지 못하고, 점심으로 라면을 먹더라. 사정을 보고 돈 받으러 간 자가 읍사무소에 가서 영세민 신청을 하라고 권했다. 충분히 생활보호대상자인데, 이 자는 가족도 없고 재산도 없으면 초라한 집에 있다. 이 자에게 누가 농약을 주나, 마누라는 농약을 주었다고 난리다. 내가 무슨 자선 사업가인가. 나는 이런 어리한 자이다. 2019년 올해 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용역에 가서 노가다 하는데, 또 농약을 준다. 나는 왜 이들에게 계속 말려들어 가는지. 이빨은 다 빠졌고, 얼굴은 언제 씻고 안 씻은지 까맣다. 옷은 항상 노가다 복장이다. 나이는 49살인데, 가족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안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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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파일 전날과 초파일 아침까지 내원암에 다시가 공양을 하고 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누구 말따나 고민 고민하게 하더라.

아침을 먹고 가게에 와서 결정은 운문사 내원암에 가서 밥 먹고 오자 하는 결정을 했다. 누구하나 밥을 챙겨 줄 사람이 없겠지만 절에 가서 밥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안 주면 시주와 연등 10만원 어치를 했으니 밥내 놔라 하면 될 것이 아니가 그래도 안주면 난리통이 나겠지, 내원암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난리통을 친다고 두고두고 욕할 사람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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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 가서 시간표를 알아보고, 친구도 없이 혼자 가기를 확정했다.

버스 시간이 AM 10:30분이다. 운문사는 오지라 버스가 자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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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는 수행자인가!!!

버스가 운문댐 끝날 쯤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데, 걸어가는 것이나 차타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수많은 인파와 차량으로 가득했다. 내원암까지 걸어서 35 ~40분 정도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시간이 더 소모될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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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가는 길이 정류장에서 차도와 인도 구분되어 있어서 처음으로 인도로 따라 갔다. 가면서 내원암 가는 방향을 찾아보니 길이 보이지 않더라. 한참 가다 목을 쭉 빼고 좌측으로 보니 내원암과 청신암 돌판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거기로 가는 인도가 없다. 이리 저리 찾아봐도 길이 없길레 인도에서 차도로 20m 쯤 수풀을 해집고 차도로 넘어 갔다. 넘어 가면서, 이렇게 하면서 밥 먹으로 내원암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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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암과 내원암은 방향이 같은데 운문사 본사 가는 길과 청신암, 내원암 가는 삼거리부터가 문제가 생기는데 여기에는 인도가 없고 오직 차도 겸 인도이다. 원체 많은 차가 계속 좁은 길로 다니는데, 청신암까지는 차와 사람이 범벅이더라. 문제는 차량 통행으로 먼지가 나는데, 코를 막을 정도로 먼지가 발생하더라. 운문사 온다고 닦은 구두는 이미 보하야게 되었고 갈길이 멀고 멀어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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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뒤를 따라가다 법당에 다다르니 낮설은 법당이라, 어느 할머니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청신암이란다. 그냥 나올 수가 없어서 법당문 밖에서 합장을 하고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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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암 입구에 나오니 내원암까지 700m라는 푯말이 있었다.

여기부터는 차와 사람들이 뚝 끊기더라, 간간이 차량이 오고가고 암자를 찾는 사람 수가 확 줄더라. 그렇지만 지나가는 차량이 먼지를 발생시키는데 짜증 정도가 아니고 욕이 튀어 나오더라. 좁은 길에 포장은 되어 있어도 가뭄 날씨라 먼지가 심하게 날린다. 행인이 있다면 차 속력을 줄이면 좋으련만 그대로 싱싱 달리니 먼지가 심하게 날 수밖에 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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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봉고차와 승용차가 내원암이라고 차에 부착하고 지나가는데, 부착 위치가 차량 앞이면 손을 들어 세울 것인데 이상하게도 차량 뒤편에 붙이고 다니더라, 승합차는 내원암 방문자를 실어 나르는 것 같은데, 이 차량 역시 차량 뒤에 붙이고 다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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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청신암을 지나고 부터는 걸어가는 사람은 내원암에 가는 보살들 뿐인데, 정차를 하고 태워 주면 어떠나. 이러한 배려도 없는 자들이 무슨 득도를 한다고, 목탁이나 두드리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는고, 이런 저런 온갖 상념이 쌓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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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가는 방향 좌측편에 남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믄 전나무가 있는데 처음에는 누가 심었나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아름드린 거목들이 있었다. 또 좌측 편은 숲속으로 평지 같이 보였는데 이곳을 개발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개발이라고 하니, 일반적인 산업용 개발이 아니라, 운문사와 사찰과 관련이 있는, 속세민들의 쉼터 같은, 또 사찰의 후생복지 같은 불교와 관련이 있는 뭔가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데 스님들의 능력으로 현 수준에서 일탈할 수가 있겠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하는 스님들의 의식세계에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가 있겠나. 이대로가 좋아요 하는 스님들이 절대 다수일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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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에 경운기 소리는 요란이 나고.

내원암 가는 중간에 경운기 소리가 나는데, 오늘 같은 날은 경운기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나. 탱탱탱 계속 돌아가는 경운기 소리를 들으니 산사의 고요함은 어디가고 분위기를 망쳐 버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산소리, 바람소리, 풍경소리는 어디 가고 탱탱 거리는 아름답지 못하는 엔진 소리를 산사를 찾는 보살들이 들어야 하나. 이건 내원암 스님들이 산사의 아름다운 소리에 경운기 소리까지 흡수 해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대단한 고승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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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목전 다리 난간에서 쉬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 피곤해서 쉬고 있으니 쉴 세 없이 내원암 간판을 차량들이 달고 들락말락 한다. 내가 왜 걸어서 여기 까지 와야 하나, 내가 무슨 수행하는 불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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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수많은 연등 속에 내 연등을 찾아보니 찾을 수가 없더라.

법당마당에 안내하시는 분에게 내 연등이 어디 있느냐 하니까, 확인 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름을 아르켜 주고 나니, 확인하러 가기에 구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남자 보살님은 가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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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앉아 좌판에 떡을 나누어 주는 보살님에게 밥은 안주냐고 물어 보니 저쪽에 가서 먹으란다. 가르키는 곳에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비빔밥을 먹고 있더라. 설거지 하는 보살님에게 밥 한그릇 청하니, 안에 있는 보살님이 비빔밥 한 그릇과 나물김치 한 종지와 수박 3쪼가리를 주더라. 마당 편상에 앉아 밥을 먹으니, 마침 등산객들이 수십명이 들어 닥치더라. 이들이 오든지 말든지 편상에 나의 영역을 유지하고 밥 먹고 수박을 먹고 앉아 경내를 쳐다보니 하늘과 내원암의 숲들이 아름답고, 내 참 잘 와서 잠시나마 내원암에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불자가 되는가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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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원암에서 등산객들을 보니 참으로 부럽더라. 등산복에 등산가방을 등에 지고,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이 참 좋게 보이더라. 나는 지금까지 단체로 등산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등산용도구와 복장도 없다. 기껏 등산하는 것은 청도 주변 산에 올라 가보는 것이 전부이고 이것도 3년에 한 번 쯤 일까. 청도읍내에 용각산이 있는데 여기에 가본지가 5년은 넘었는 것 같다. 이것도 초등학교 동기회에서 주최하여 간 것이고 나 혼자 가본적은 있는데 언제 갔는지 기억이 아물아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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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을 좋아 한다.

그렇지만 명산에는 간 기억이 없다. 기껏해야 야산 정도이다. 이것도 야산 정상이 아니고 산 중턱정도다. 앞도 산이고 뒤도 산인 산속에 사는 속물이라 이런지. 내가 인정하는 것은 농사는 짓지만 농사꾼도 아니고, 장사는 하지만 장사치도 아니고, 내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현재로선 돌팔이 반풍수라는 것은 인정한다. 인정하고 아니하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돌팔이 반풍수가 산을 자주 찾지 않는다. 그러니 영영 돌팔이에서 끝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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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운문사 본당에 가다.

내원암에서 운문사까지 걸어서 한참 내려 와야 한다. 이번에도 지나가는 차량 먼지에 고충을 격는다. 내가 올라 올 때 많은 차량들이 들락말락 했는데 혹시 내려가는 차를 찾아 동승할 것을 권한다면 태워 줄까. 또 승합차를 운행하는 것 같았는데 이 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 이런 저런 생각은 아니 나고, 운문사 가는 생각뿐이라 또 먼지 속으로 내려 와야 했다. 나는 참으로 멍청한 사람이다. 멍청한 인간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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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수많은 인파속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고.

운문사 대문 입구에서 청도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줌마를 만나고, 비로전 법당내에서 우리 가게 옆집 아줌마를 만난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 이 분들은 모두가 혼자 온 것아 아니고 가족과 동행했더라. 나는 무슨 인간인지 나 혼자 운문사를 찾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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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0여 년 전 운문사 온 것이 상기(想起)되는데.

운문사에서 남쪽방향 개울을 건너서 당시 갈대 숲 평지에, 명칭을 뭐라 하여야 하나, 학우들 7, 8명들과 여학생들이 함께 왔는데, 미팅이라 하자. 그 때 한 동기가 엉덩이로 이름을 쓰라고 하는데 처음엔 이상하더라, 그러니 엉덩이로 이름 쓰는 흉내를 내라고 하는 것이다. 왠지 그 때 그 일이 생각나는지. 그 때 그 사람들 잘 있는지, 그런데 그 당시 동문들과는 연락이 안 된 지가 졸업 후 40여년이 되고 기억도 가물가물한다. 왜 이토록 연락도 없이 살아가는지, 모두가 자존과 자만심만 가득하니 이렇게 되는 것인가. 그때 내 파터너가 위 ㅇㅇ 인데, 미팅 후, 한번인가 만난 적이 있는데, 인연이 없어서 그런지 그 후 연락이 두절이라. 전화번호가 지금도 아리송하다. 그 당시 전화번호가 지금 통화 될 수는 없겠지만 자꾸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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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초파일 1주일(519)후 청도 연등축제날에 내원암 주지를 만나고.

연등 다는 날 스님이 연등축제에 오신다는 말을 하길래 하번 뵐까 싶어 행사 직전날 행사장에 가보니 내원암 행사본부는 없고 여러 사암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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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첫날 행사장에 가니 운문사에 같이 간 친구를 행사장에서 만났다, 같이 사암 본부에 가니, 스님들이 있었는데, 친구가 나를 한 스님에게 소개를 하더라. 내가 합장을 할 틈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시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소개 받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무시한다고 할까, 건성 건성으로 대하는 것이다. 행사장엔 많은 학생 스님들도 보였는데, 주지스님은 얼굴이 젊고 팔팔한 생기는 안보이고 피부가 퇴화 되었다고 할까, 세속말로 하면 나이태가 난다고 할까. 이 친구가 지난번 내원암에 같이 간 친구라고 하는데도 거의 무반응이다. 이런 식이라면 인사할 필요도 전혀 없는데. 어리둥절 하는 사이 스님은 사라지고 막사에 들어가니 홍차지 뭔지가 나오고 조그마한 떡 몇 조각이 나오며 어느 보살님이 주시는데 나는 먹어야겠다고 홍차도 마시고 떡 몇 조각을 먹었다. 사실 홍차는 아닌 것 같고 붉은색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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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붉은색 차와 떡이 내원암 주지스님과 만나 인사하는 것을 보고 보살님이 주시는 것인지, 친구 안면으로 주는 것인지 모르겠더라. 친구는 보살님도 아시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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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무대 쪽에 앉아 북한 가수가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듣고, 저 가수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다. 무대 위에 올라가 많은 청중들 앞에 노래도 부르고, 좌우간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부르는 노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것을 부르는데, 통일이 되겠나. 체제가 다른 두 政治集團인데, 국민, 인민, 서민, 만 백성이 원한다고 統治 지도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쉽게 포기 하겠나. 자신들의 統治哲學은 모두가 옳은데, 또 국가체제와 주변국가와 상황과 맞물려 있으니, 통일을 원하지만 사실상 통일은 현 국제 정세로 요원하다. 언젠가, 언젠가 통일이 되겠지만 그 시점이 까마득하여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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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척척 내린다. 우산도 우의도 없이 수행자 같이 행사장에 앉아 있으니 비가 너무 와서 집으로 왔다. 행사 마지막 날 또 연등행사장에 전날과 같은 장소에 갔는데, 많은 스님들은 없고, 한 스님을 만났는데 이 스님이 아는 척 하길레 보니 용산사 주지 스님이시라 합장을 하니 그리 반가와 한다. 비는 너무 많이 와서 행사가 끝날 때 까지 있지 못하고 행사장 나오면서 용산사 주지 스님보고 또 합장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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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사 스님과 내원암 스님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너무 차이가 난다. 용산사 스님은 본지가 십 수 년은 훨씬 지났고, 자주 만나는 스님도 아니다. 지금까지 대면한 적도 없다,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고, 옆을 지나가면 얼굴 기억도 없는 스님이다. 용산사 스님은 나를 잘 아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스님 출생지만 알 뿐이고 스님의 의식의 세계는 전혀 모른다. 그래도 먼저 아는 척이라도 해주니까 참으로 반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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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가는 길에 뽀호얀 먼지를 덮어쓰고 가는 나는 수행자인가 고행자인가. 뭣 때문에 밥 한 그릇 먹으로 혼자서 가는지,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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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스님이 건성 건성으로 대하는 대인관계 처신을 보고,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대우받는 정도의 속물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이름 없는 사찰 스님이 대하는 것과 한국명사의 암자 주지가 대하는 것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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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 말이 생각난다.

뭐라고 중을 만나 보노, 절 건물이나 보고, 경치나 둘러보고 오면 되지. 니 미쳤다하는 말이 명언인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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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더라 어느 수행자가 고승을 찾아 가는데 그 고승 나이가 120세인데, 수행자가 오랜 기간 동안 고행하면서 스님이 계신 절에 갔는데 수행자와 고승이 법당 밖 법당 처마 밑에서 만났는데, 고승이 말한 것은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했는 것이 전부란다. 그 수행자는 그 먼 길은 수개월 동안 걸어가면서 온갖 상념을 했겠지, 그 가는 과정이 수행이고, 고승 만남 자체만으로도 득도(得道)인 것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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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행자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니며, 세파에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촌부이다. 모든 것은 촌부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러니 촌부의 의식에서 일탈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나의 한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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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경내를 나오는 중에 큰 감나무들이 수십그루가 있는데 연두색 감나무 잎이 나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저 감나무를 잘 가꾸면 참 좋은데 부처님 오신 날은 연두색 광채가 나고 한 여름은 짙은 녹색으로 역시 광체가 나며 가을은 아름다운 붉게 물들어가는 감나무는 너무 좋은 관상수이며, 가을 하늘에 빨강 감홍시는 가을 하늘을 그림 그린다. 이 얼마나 좋은 세계적인 정원수인가. 그런데 우린 이것을 모르더라, 정말 아쉽다. 그리고 운문사 경내 강 건너 우측편에 경지 정리된 논인데 이곳에 복숭아 나무를 심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맛을 자랑하는 초 고당도 복숭아를 생산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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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에 오면 뭔가 타 지역 보다 특이 한 것이 있어야 하고, 운문사는 충분히 이러한 잠재력이 있는 사찰이다. 다만 현재는 잠자고 있을 뿐이다. 미래 언젠가 새로운 대승이 나타나 운문사를 재건할 것으로 기대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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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가 세계적인 사찰이 되기 위해서는 운문사를 개발해야 한다. 이대로는 천년동안 내려오는 관습대로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 30여 년 전 해인사에 갔을 때 어느 요사체에서 노승이 있었는데 그해 초겨울인데 그 노승이 물리층(문간 마루층)에 앉아 있었는데 너무 쓸쓸해 보이더라. 운문사에서는 노승들에 대한 복지 정책을 잘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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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원암에 간다면 필히 노스님을 만나고 싶다. 반드시 가고 싶다.

주지스님은 나와는 코드가 안 맞는 인간이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코드가 맞는 사람도 다 만날 수가 없는데 구지 맞지 않는 사람과 시대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노스님 역시 주지스님과 한 솥에 밥을 먹으니 똑 같을 수 있겠지만, 이름 없는 사찰 주지스님이 반갑게 인사하는 것과 같이 노스님은 주지 스님과 다를 수 있을 것으로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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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에 천년의 암자에 무엇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했는가.

스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재 했을까. 그동안 스쳐 지나간 수백명의 주지 스님 때문에 절이 생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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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는 스님들 때문에 존속해 왔는 것이 아니고, 운문사 산세가 인간들을 끌어 모았고, 앞으로도 영속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게 할 것이다.그렇다면 운문사의 주지와 스님들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고, 구지 이들에게 연연할 필요도 없다. 운문사나 내원암 건물이나 운문산 산세나 풍경을 보고 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농사 짓는 친구의 말이 명언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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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3.

멍청한 인간 kimsunbee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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